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종묘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총면적 5만 6503평.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있다. 원래는 정전(正殿)을 가리키며,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중국의 우(虞)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종묘제도는 상(商)·주(周) 시대에는 7대조까지 묘(廟)에 봉안하는 7묘제가 시행되다가 명(明)나라 때에는 9묘제로 바뀌었다. 한국의 경우 종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392년(고구려 고국양왕 9)에 보이며, 신라에서는 5묘제, 고려에서는 7묘제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5묘제도를 따르다가 중기 이후부터는 치적이 많은 왕은 5대가 지나도 정전에 그대로 모셨으며, 그 밖의 신주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 모셨는데, 이를 조천(祧遷)이라고 하였다.
인사동
길이 0.7㎞, 너비 12m이다. 짧고 좁은 길이므로 가로명을 붙이는 기준에 미달되지만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1984년 11월 7일 도로명이 처음 제정되었으며, 이 길이 통과하는 중심지인 인사동에서 도로명이 유래하였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안국동 사거리에서 장교(長橋)를 건너 청계천으로 갈 수 있었다. 1986년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된 뒤,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4월 13일부터는 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거리축제가 열린다. 고미술품·골동품·골동서화뿐 아니라 선인들의 생활도구·장신구 등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갖가지 전통공예품 등이 집결되어 있어 옛 정취가 그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