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호텔출발-수문장교대의식-경복궁/민속박물관 (화요일/덕수궁)-조계사-중 식 창덕궁(월요일 : 남산 한옥마을) 인사동-김 박물관/한복입기-남대문 시장 -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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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장교대의식
조선시대 수문장은 흥인지문, 숭례문 등 도성문과 경복궁 등 국왕이 임어(생활)하는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였습니다. 수문장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광화문을 여닫고 근무교대를 통하여 국가의 중심인 국왕과 왕실을 호위함으로써 나라의 안정에 기여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수문장 제도가 확립된 시기는 조선 예종 1년 (1469년)으로 그 이전까지는 중앙군인 오위(五衛)의 호군(護軍)이 궁궐을 지키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경복궁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와 그 지지자들은 고려의 서울인 개경(開京)으로부터 도읍을 한양성(漢陽城)으로 옮겨 신도(新都) 경영에 착수하는 동시에 궁궐의 조성도 착수하였다. 원래 태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宮井洞 일대) 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새로운 왕조의 뻗어나는 기세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좁은 터전이라 하여 그 남쪽에 따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일단 옮긴 태조는 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12월 3일에 궁궐과 종묘를 짓겠다고 산천신(山川神)에게 고사하고, 이튿날 개기(開基)하여 주야로 작업을 진행, 1395년 9월에 낙성을 보게 되었다.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서 경복궁이라 하였다. 궁내에 준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한복체험
김박물관/한복체험은 한국의 김을 만드는 과정을 볼수있는 김박물관 관람과 더불어 한국전통의 한복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어보는 프로그램으로 요즘 외국인들이 제일 많이 하는 프로그램중 하나 입니다.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인사동
길이 0.7㎞, 너비 12m이다. 짧고 좁은 길이므로 가로명을 붙이는 기준에 미달되지만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1984년 11월 7일 도로명이 처음 제정되었으며, 이 길이 통과하는 중심지인 인사동에서 도로명이 유래하였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안국동 사거리에서 장교(長橋)를 건너 청계천으로 갈 수 있었다. 1986년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된 뒤,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4월 13일부터는 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거리축제가 열린다. 고미술품·골동품·골동서화뿐 아니라 선인들의 생활도구·장신구 등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갖가지 전통공예품 등이 집결되어 있어 옛 정취가 그윽하다.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종합시장이다. 없는 물건을 찾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판매되는 시장으로 65㎢의 넓이에 1만여 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낮에는 소매시장으로 밤에는 도매시장으로,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시장 자리는 한양의 정문인 숭례문 옆이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물자로 인하여 시장이 만들어지기에 좋은 입지조건이다. 그 덕에 조선 초부터 이곳에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처음에는 조정이 감독하는 시전의 형태로 운영되다 자연스럽게 좌판들이 늘어서면서 대규모 시장으로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