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에 호국전쟁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료를 보존 전시하고 국민정신교육장으로 역할을 하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사업회에서 1994년 6월 10일 전쟁기념관을 세웠다. 전쟁기념관은 옥내전시와 옥외전시로 구분되어 있으며 3만 3천여 점의 소장유물 중 1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1만 900여 평의 옥내전시실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대형장비실 등 6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형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옥외전시실이 있다. 3층 규모의 옥내전시실은 삼국시대로부터 현대까지 5천년 대한민국 전쟁사와 위국 헌신한 분들의 공로와 훈장 등이 실물·디오라마·복제품·기록화·영상 등의 다양한 전시기법에 따라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임진각 공원
임진각과 북한기념관, 각종 기념비 및 통일공원 등으로 이루어진 통일 안보관광지이다. 1972년 임진각이 세워진 후 조성되기 시작하여 2005년까지 개발될 예정이다. 군사분계선에서 7km 남쪽에 있다. 임진각 안에 있는 북한전시관은 약 300㎡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이다. 지하 1층에는 세계 희귀 패류, 1층에는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서는 최근의 북한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상영하며, 3층은 전망대이다
서대문형무소
1908년 7월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래,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불렸다. 해방 후에는 1946년 경성형무소, 1950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그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함에 따라 1988년 2월 이곳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해방 후에 지은 건물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수감되었던 일부 옥사와 사형장, 그리고 보안과 청사 및 병사(病舍) 등 모두 11개 동이 남게 되었다.
제3땅굴
제3땅굴은 1974년 9월 5일 귀순한 북한의 김부성씨에 의해 땅굴공사 첩보를 근거로 1975년부터 문산 지역에 대한 시추작업을 하였으나 땅굴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다가 1978년 6월 10일 시추공 중 1개가 폭발함으로서 역갱도 굴착 공사를 실시, 1978년 10월 17일 적갱도에 관통하여 판문점 남방 4㎞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이 땅굴은 그 위치가 서울에서 불과 52㎞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제2땅굴과 비슷하나 서울로 침투하는데 있어서는 제1, 2땅굴보다 훨씬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 통일촌 민가에서 3.5㎞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서울에서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