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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서울의 상징인 남산은 옛 이름을 목멱산이라고 하였으며, 도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으로 불리어 왔다. 남산은 그 자연의 경치가 아름다워 우리의 조상들이 골짜기마다 정자를 짓고 자연의 순리에 시·화로 화답하는 풍류생활을 하던 곳으로서 각종 놀이와 여가생활을 위하여 수려한 경관을 찾는 선남선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 곳 남산골 전통정원 내에는 그 동안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 수종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고, 또한 정자·연못 등을 복원하여 전통양식의 정원으로 꾸몄다. 정원의 북동쪽 7,934㎡ 대지에는 시내에 산재해 있던 서울시 민속자료 한옥 5채를 이전, 복원하고 이 한옥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성격에 걸맞는 가구 등을 배치하여 선조들의 삶을 재조명 하였으며, 전통공예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상품을 항상 전시·판매하고 있다.
서울타워
서울타워 전망대는 1969년 12월 동양방송·동아방송·문화방송 등 3개의 민영방송국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종합전파탑과 함께 관광전망대의 건설을 허가받아 한국 기술과 장비로 착공하여 6년간의 공사 끝에 1975년 8월 완공하였다. 1981년 10월 15일 일반에게 공개(3층까지만)되어 관광명소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탑에 올라가면 서울 전역은 물론 멀리 송악산(松嶽山)과 인천항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2000년 YTN에서 인수하고, 2005년 4월 YTN이 CJ와 서울타워 리노베이션 계약을 맺고 전면 개설공사를 하여 2005년 12월 N서울타워로 개장하였다. N서울타워는 해발 479.7m이며, 철탑·탑신 높이가 각각 101m·135.7m이다.
이태원
李泰院', '利泰院'이라고도 쓴다. 대개 역원(驛院)을 두면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의 이름도 원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일이 관례처럼 되어 왔다. 서울 남산의 남쪽, 지금의 용산구 이태원동의 동북쪽에 역원 이태원을 두었는데 그 주변에 마을이 생기자 이 마을의 이름도 이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1907년(융희 1) 이곳의 개발을 위하여 주민들을 당시 경기도 고양군 구역 내로 이주시키고 그 마을 이름도 이태원이라 하였다.
처음의 이태원은 일본인 전용 거주지로 조성, 이름을 수도정(水道町) 2정목(二丁目)이라 하였으나 주민들은 '이태원'이라 불렀다. 1922년 4월 경성부(京城府)의 확장에 따라 이태원리는 경성부에 편입되고 그때까지 경성부와 고양군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었던 2개의 이태원은 하나로 광역화하여 지금의 용산구 이태원동이 되었다.
청와대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회의실 및 주거실 등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경호실·춘추관·영빈관 등 부속건물로 되어 있고 넓은 정원과 북악산(北岳山)으로 이어지는 후원(後園) 및 연못이 있다. 본관은 2층 화강암 석조에 청기와[靑瓦]를 덮어 ‘청와대’란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 곳은 일찍이 고려시대에 남경(南京)으로서의 별궁(別宮)이 있던 터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 경복궁(景福宮)을 창건하면서 궁궐 후원으로 삼아 이 곳에 연무장(鍊武場), 융무당(隆武堂), 경농재(慶農齋) 및 과거장(科擧場)이 마련되었으며, 왕의 친경지(親耕地)로도 사용되었다.
경복궁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와 그 지지자들은 고려의 서울인 개경(開京)으로부터 도읍을 한양성(漢陽城)으로 옮겨 신도(新都) 경영에 착수하는 동시에 궁궐의 조성도 착수하였다. 원래 태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宮井洞 일대) 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새로운 왕조의 뻗어나는 기세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좁은 터전이라 하여 그 남쪽에 따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일단 옮긴 태조는 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12월 3일에 궁궐과 종묘를 짓겠다고 산천신(山川神)에게 고사하고, 이튿날 개기(開基)하여 주야로 작업을 진행, 1395년 9월에 낙성을 보게 되었다.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서 경복궁이라 하였다. 궁내에 준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전시 기능, 근현대사와 관련해 수집·조사·연구한 자료를 한 곳에 담아내는 아카이브 기능, 교육프로그램이 결합된 역사문화공간으로 운영할 목적에 따라 설치되었다. 설치 배경은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가 8·15 경축사에서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공포한 데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2009년 4월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하고, 5월에는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추진단'이 발족됐다. 같은 해 10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이 확정되었다. 건물 착공식은 2010년 11월 25일이었으며 건립공사는 2012년 5월 23일에 완료되었다. 개관일은 2012년 12월 2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