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호텔 - 남대문 시장 - 면세점 - 인사동 - 중 식 - 이태원 -동대문 두타시장 광장시장 - 호텔
남대문 시장
동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종합시장이다. 없는 물건을 찾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판매되는 시장으로 65㎢의 넓이에 1만여 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낮에는 소매시장으로 밤에는 도매시장으로,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시장 자리는 한양의 정문인 숭례문 옆이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물자로 인하여 시장이 만들어지기에 좋은 입지조건이다. 그 덕에 조선 초부터 이곳에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처음에는 조정이 감독하는 시전의 형태로 운영되다 자연스럽게 좌판들이 늘어서면서 대규모 시장으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좌판들이 합법적으로 상품을 판매할 권리를 얻게 된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인데, 정조 때 시전 상인들이 난전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인 금난전권을 철폐하면서부터이다. 지금은 남대문상인회조합이 만들어져 조합을 중심으로 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인사동
길이 0.7㎞, 너비 12m이다. 짧고 좁은 길이므로 가로명을 붙이는 기준에 미달되지만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1984년 11월 7일 도로명이 처음 제정되었으며, 이 길이 통과하는 중심지인 인사동에서 도로명이 유래하였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안국동 사거리에서 장교(長橋)를 건너 청계천으로 갈 수 있었다. 1986년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된 뒤,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4월 13일부터는 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거리축제가 열린다. 고미술품·골동품·골동서화뿐 아니라 선인들의 생활도구·장신구 등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갖가지 전통공예품 등이 집결되어 있어 옛 정취가 그윽하다.
이태원
'李泰院', '利泰院'이라고도 쓴다. 대개 역원(驛院)을 두면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의 이름도 원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일이 관례처럼 되어 왔다. 서울 남산의 남쪽, 지금의 용산구 이태원동의 동북쪽에 역원 이태원을 두었는데 그 주변에 마을이 생기자 이 마을의 이름도 이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1907년(융희 1) 이곳의 개발을 위하여 주민들을 당시 경기도 고양군 구역 내로 이주시키고 그 마을 이름도 이태원이라 하였다.
동대문시장
쇼핑 명소로 유명한 동대문시장은 패션의 최첨단 기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원래 동대문시장은 미곡상, 어물상, 청과물상 등이 주를 이루어 1905년에 90여 개의 점포로 시작된 광장시장이 그 출발이 되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전쟁 이후 주로 월남 피난민의 생활 터전이 되었으며 생활 수품과 군용물자, 외래품이 거래되면서 다시 시장으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광장시장을 시작으로 창신동 문구거리까지 약 1.3㎞에 걸쳐 청계천로 좌우로 형성된 시장 전체를 동대문시장이라 부르는데 건물 약 30여 동에 3만여 개의 점포가 있다.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신평화시장 등이 전통적인 도매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들도 이곳 구석 구석에 숨어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쪽의 아트플라자, 디자이너클럽, 우노꼬레 등은 현대적인 상권을 형성한 곳으로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소매 의류 상인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용산전자상가
정부시책의 일환으로 청계천 세운상가에 있던 전자제품·조명기구 등의 각종 점포를 농수산물을 유통하던 나진상가(용산청과시장)로 이전하여 나진상가·원효상가·선인상가·터미널상가·전자랜드·전자타운 등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한강 오피스텔·삼구빌딩·청진빌딩 등의 사무실 빌딩과 주변 상가들이 형성되어 용산 전자상가의 상업권에 편입되었다.